‘카다피’로 종지부 찍은 20년 악연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북한이 제일 혐오했던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전격 경질은 북핵 외교가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볼턴은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보장할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트위터’로 내치면서 느닷없이 카다피를 소환했습니다. 40년 이상 리비아를 철권 통치해 온 독재자 였던 그는 2003년 핵 프로그램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뒤 관련 시설과 자료를 공개하고 핵 사찰을 허용했습니다. 이후 미국은 리비아와의 국교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된 것은 그 직후의 일입니다. 이른바 ‘리비아 모델’이 완성된 것으로 미국에서는 불량국가 비핵화의 모범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다피는 2011년 ‘자스민 혁명’으로 실각(失脚)한 뒤 시민군에 쫒기다 최후를 맞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카다피의 최후를 ‘선(先) 핵폐기’와 연결 짓기도 합니다by ‘카다피’로 종지부 찍은 20년 악연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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