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친일 고무신 vs 민족 고무신, 피 튀겼던 마케팅 열전
플래시백‘…안국동 고무신 장사 이명근은 2일 하오 11시부터 3일 새벽 사이에 문을 열고 자다가 고무신 80켤레, 시가 70원어치를 잃어버렸다더라.’ ‘김병도는 지난달 그믐 대전 축출 상점에서 주인의 심부름이라고 속이고 고무신 2원짜리 한 켤레와 각종 물건 수십 원어치를 사취했던 바…’ 1920년대 초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들입니다. 신문엔 이밖에도 고무신 절도사건이 종종 등장했죠. ‘고무경제화’, ‘호모화’로도 불렸던 고무신이 얼마나 인기 있는 ‘잇템’이었는지 보여줍니다. 고무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910년대 후반인데, 처음부터 잘 팔리진 않았습니다. 바닥창만 고무고 나머지는 가죽이나 천으로 만든 구두 모양이라 낯설었던 것이었을까요? 그때 이병두라는 걸출한 실업가가 나타납니다. 평양의 일본인 잡화상 사환이었던 그는 고무신이 되겠다 싶어 독립해 일본에서 물건을 떼어 팔다 투자자를 구해 아예 공장을 세우죠. 그리고 1920년 봄 남자 고무신은 짚신과 비슷하게, 여자 고무신은 앞이 뾰족한 코신 모양by [동아플래시100]친일 고무신 vs 민족 고무신, 피 튀겼던 마케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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